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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야기

[책] 알랭 드 보통 <불안>, 책 리뷰

by 지롱이. 2023.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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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 정영목 번역 / 출판사 은행나무

결국은 두려움이 모든 일의 근원이라는 느낌이 든다. 자신의 자리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은 남들이 경시하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지 않는다. 오만 뒤에는 공포가 숨어 있다. 괴로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만이, 남에게 당신은 나를 상대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느낌을 심어주려고 기를 쓴다.   - 「불안」35p

 


1. 내가 만난 알랭 드 보통의 첫 책

 

 새로운 책을 사기보다는 한번은 읽었던 책들을 좀 더 깊이 읽어보자 결심하고 먼지 낀 책장을 뒤져 찾아낸 첫번째 책이 바로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다. 이 책은 내가 산 보통의 첫번째 책이다. 붉은 색의 겉표지가 인상적인, 이름만 들어도 묘한 느낌을 주는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인간이 창조해낸 많은 분야들 - 철학, 예술, 문학, 그리고 역사를 비롯하여- 을 통해 '불안' 이라는 '보편적이지만 심오한' 심리의 정의와 원인, 그리고 해법을 풀어나간다.


 지금은 보통의 책을 대부분 소장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연애 심리를 다룬 소설이 가장 유명하다고 해서 읽어보았으나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가장 맘에 들었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다보면 감탄하게 되는 부분이 있는데, 어떻게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다양하게 풀어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도 그 특유의 문체로 굉장히 위트있게 풀어내곤 해서 몇몇의 소설이 아닌 책들이 그렇듯 곧 지루해져 책장을 덮어버리는 일은 거의 없다. 이번에 책을 읽을 때에는 해법보다는 앞부분, '불안의 원인'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 읽었다, 불안이란 다소 추상적인 키워드를 가볍지 않으면서도 위트있게 정리해서 좋은 교양 심리학 참고서를 한 권 읽은 느낌이었다.

 

우리가 실패에 대한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은 성공을 해야만 세상이 우리에게 호의를 보여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족의 유대, 우정, 성적인 매력 때문에 가끔 물질적인 동기가 부차적인 것이 되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이 자신의 요구를 온전히 충족시켜 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무모함 낙관주의자일 것이다. 인간은 웃어줄 만한 확실한 이유가 없으면 좀처럼 웃어주지 않는 법이다.(p.137)

 

 

 


2. 불안의 원인 

 

 보통은 불안의 원인으로 다섯 가지,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을 거론한다. 이 다섯 가지를 파고 들어가다 보면 불안에 대한 공통된 근본적 원인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는 바로 지위에 대한 불안이다. 어린 시절, 나에게 있어서 부모님의 애정은 높은 지위-부모님의 사랑을 받는-를 가지려는 욕망의 동기였고, 내 성취에 대한 보상이었다.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타인의 자부심어린 시선이 나에겐 성취하고자 하는 동기부여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정확하게 말하자면 ‘만약 내가 실패한다면?’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그 때부터 어린 시절의 나는 사랑받지 못할까봐 불안해했다. 물질적인 것에 대한 욕망의 개념조차 불확실한 어린 시절에도 실패를 하면 내 자신의 정체성이 무시당한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싫었던 것 같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만 질투한다. ( 59p )

 

어린 시절에 애정으로 파생된 지위에 대한 불안이 존재했다면, 성장하면서는 사회 안에서의 지위에 대한 '비교'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 비교에서 파생되는 불안은 열등감이라는 요소가 바탕이 된다. 책에서도 말하지만, 열등감은 상대적이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뉴스에 방송되는 천재들에 대해서는 질투하지 않으면서, 그에 비하면 뛰어나다고 말하기 힘든 옆집의 동갑내기에게는 시기와 열등감을 느낀다. 나 또한 어린 시절엔 사랑 받기 위해서 노력했다면, 나중에는 주위 또래들 사이에서 비교 열위가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었던 기억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불안감을 극복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한다. 처음엔 부모님의 비교, 그리고 학교에서의 비교, 마지막으로 사회에서의 비교까지. 당장 내 눈앞에 있는 수많은 비교대상에 지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비교 우위에 서는 것으로 제 존재를 인정받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근본적인 자신들의 불안감이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서는 회피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돈이든, 명예든, 타인에게서 비롯되는 열등감을 인정하는 것이 되어버리고 마니까.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는 자신이 열등감으로 인해 불안해 한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또 불안해한다는 사실이다.

 남들에게서 자신이 (충분히 선택할 수 있었다고 생각되지만) 하지 않은, 혹은 하지 못한 선택의 긍정적인 면을 볼 때 생기는 열등의식과, 또 과거의 다른 선택으로 지금 다른 모습일수도 있었을 거라는 후회, 그 때문에 현재의 (자신, 혹은 타인의 기대보다) 낮은 지위에 있다고 스스로 판단해버린 생각들. 그리고 그로 파생된 불안을 애써 숨기려고 하는 마음이 결론적으로 끝없는 불안을 생성해내는 원인들이 되는 것 같다.

 결국 불안이라는 감정은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이상은 영원히 없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동물이라고들 말하는데,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끊임없이 불안해 한다는 것은 어딘가 모순적이다.

 


3. 불안의 해법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 이야말로 불안과 울화의 원천이다. (p.58)

 

 

불안은 나를 포함한 지금을 사는 모든 이들에게 만성두통 같은 존재 일 것이다.  나의 경우에도 나이를 먹어갈 수록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더 커지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앞으로도 계속 더 높은 지위와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로 인해 계속 불안해 할 것이다. 물론 욕구를 내려놓는 것이 불안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지금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와 정서가 (특히 한국의 경우) 바뀌지 않는 한은 불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비록 완치는 어려울지언정, '진통제'로 어느 정도 고통은 가라앉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 안에서 보통이 다소 추상적으로 다섯 가지의 해법을 제시하긴 했지만 결국 불안에 대한 진통제는 스스로 찾아야 할 숙제가 아닌가 싶다. 내 불안의 원인은 자신이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으니, 처방전 또한 스스로 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 않을까.

다만 ‘나 자신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지만, 흔들리는 순간부터 내가 아닌 사회의 태도가 우리의 의미를 결정짓게 된다’는 작가의 말처럼, 무슨 일을 하든지 남의 속도에 맞추어 급하게 따라가려다 결국 넘어져서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기 보다는, 다소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조급해하지 말고 온전히 내 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좀 더 단단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책 한 권으로 나의 불안함이 없어지진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애써 외면해 왔던 나의 수많은 불안 요소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이 책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알랭드보통 불안 책리뷰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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